불교나 힌두교에서 ‘카르마(Karma)’라는 단어는 ‘업(業)’ 또는 ‘업보(業報)’를 의미합니다. 과거의 선행이나 악행이 현재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다시 현재 벌이는 행동이 다음 생을 결정한다는 것이죠. 이 윤회의 고리가 정말로 존재한다면, 고프로(GoPro)의 닉 우드먼(Nick Woodman) CEO는 전생에 하늘과 단단히 악연이었음에 분명합니다. 지상에서는 액션캠을 통해 승승장구했지만, 드론을 만들겠다고 공언한 이후부터 스텝이 완전히 꼬였기 때문이죠.

닉 우드먼 CEO. 사진=commons.wikimedia.org

서론이 무척 길었는데요. 드론뉴스요약을 통해 소식을 전했다시피, 고프로가 자사의 첫 드론안 카르마를 전량 리콜한다고 선언했습니다. 카르마가 출시된 지 불과 16일 만에 벌어진 일이었는데요. 그 기간 동안 팔린 카르마는 2500여대 정도였습니다.

관련 뉴스 보러가기

카르마 정도의 기대작이 채 날개를 펴기도 전에 꺾여버렸다는 건 드론 애호가들 입장에서 참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고프로 입장에서는 재앙일 테고요. 이번 기사에서는 대체 왜 이런 사태가 일어났는지 살펴보고, 앞으로의 흐름을 전망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전량 리콜된 카르마의 정체는?

리콜이라는 멍에를 쓰게 된 카르마. 사진=gopro.com

 

1. 대체 무슨 일이?

리콜의 직접적인 원인은 배터리의 급속방전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렇게만 얘기하면 감이 잘 오지 않으실 텐데요. 단순히 배터리가 예상보다 빠르게 닳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순식간에 배터리가 비행이 불가능한 수준까지 소모되며 추락까지 이어졌죠. 멀쩡히 날던 드론이 땅바닥에 곤두박질쳐버리니 구매자 입장에서는 황당한 일이었습니다. 사고 위험성도 무척 컸고요.

사고영상 1. 영상=youtu.be/i4nRalvmBhA

사고영상 2. 영상=youtu.be/yvtttyMnNKk

사고영상 3. 영상=youtu.be/d6AuHJ-HTFY

닉 우드먼 CEO는 “안전은 고프로에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라며 전량 리콜 결정의 배경을 밝혔는데요. 그러면서 “제품의 문제를 알려온 구매자는 극소수”라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냉정하고 삐딱한 시선으로 보면, 몇 만 대도 아니고 고작(?) 2500대 수준에서 ‘극소수’ 운운하는 것에는 어폐가 있죠. 카르마 자체가 결함이 있는 제품이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겠습니다.

다만 리콜 자체가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지금까지 드론 제조사들은 안전 문제가 발생해도 개별적으로 환불이나 교환을 해주는 정도로 문제를 덮어 왔는데요.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와 비용은 고스란히 소비자의 몫이었습니다. 사고가 났을 경우 사용자 과실이 아닌 제품 결함 때문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자료를 제조사 측에 제출해야 했고요. 이런 측면에서 보면 고프로의 빠른 리콜 결정은 상당히 적극적이고 선진적인 대처였다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서비스 정신은 다른 기업들이 좀 배웠으면 좋겠네요.

고프로의 서비스 정신은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사진=picserver.org

 

2. 왜 이런 일이?

아직까지 고프로 측에서는 문제의 원인에 대해 뚜렷한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때문에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하고 있는데요. 유력한 설 중 하나가 바로 짐벌(Gimbal)의 위치 문제입니다.

일반적으로 드론에서 짐벌은 기체 하단 정 가운데에 위치합니다. 기체의 무게중심을 고려하여 비행안정성을 높이기 위함인데요. 촬영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거슬렸던 게 사실입니다. 영상에 기체나 짐벌이 찍힐 우려가 있어서 각도 조절에 한계가 있었거든요.

카르마는 짐벌이 앞쪽에 달렸습니다. 영상=youtu.be/N1C6QRodsc8

하지만 카르마는 파격적으로 짐벌을 기체의 앞쪽, 즉 진행 방향에 장착했습니다. 앞이 탁 트여 있기 때문에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촬영하는 것이 가능해졌죠.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 한쪽으로 무게가 쏠리기 때문에 비행안정성은 확실히 떨어집니다. 짐벌 위치를 문제삼는 의견에 따르면 카르마가 추락에 이르는 과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짐벌과 카메라 쪽에 과중한 부하가 걸린다 → 모터가 순간적으로 맹렬히 작동한다 → 모터에 전력을 공급하는 배터리가 급속히 방전된다 → 추락한다”

어떤가요, 그럴듯해 보이나요? 또 이런 추측도 있습니다.

“짐벌의 위치 때문에 기체에 막대한 진동이 발생한다 → 진동의 영향으로 배터리의 접촉이 느슨해진다 → 순간적으로 배터리가 분리되면 기체는 동력을 잃고 추락한다”

이것도 일리가 있어 보이죠? 물론 짐벌의 위치가 아닌 다른 원인이 있을 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고프로 측에서는 짐벌 때문이 아니기를 바라고 있을 텐데요. 배터리 자체의 불량이거나 소프트웨어적인 문제라면 그 부분만 손을 봐주면 되지만, 짐벌의 위치가 문제일 경우 전반적인 디자인을 수정해야 하며 마케팅 포인트도 새로 잡아야 하기 때문이죠.

 

3. 앞으로 어떻게 될까?

얼마 전 리콜 사태로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7은 생산을 완전 중단한다고 밝힌 바 있는데요. 고프로는 일단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문제를 확인하고 결함을 보완한 뒤 다시 카르마를 시장에 내놓겠다는 복안인데요. 고프로에게는 안된 말이지만 상황이 그렇게 녹록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생산 중단이 선언된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7. 사진=flic.kr/p/LY5gxs

가장 큰 장애물은 안 끼는 데가 없는 드론계의 마당발 DJI입니다. 아무리 봐도 ‘카르마 저격수’로 보이는 DJI의 신제품 ‘매빅(Mavic)’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상황이라, 카르마가 다시 등장한다고 해도 경쟁력이 있을지가 의문이죠.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매빅. 사진=dji.com

이번 리콜 사태로 인한 이미지 타격도 만만치 않을 전망입니다. 사고를 친 기업의 이미지가 깎이는 것이야 당연지사지만, 한 가지 문제가 더 있습니다. 고프로의 출생 신분(?)이 그것이죠.

잘 아시다시피, 고프로는 드론 전문기업이라고 볼 수 없는 곳입니다. 액션캠인 ‘히어로(Hero)’ 시리즈를 통해 지금의 명성을 얻었고, 사람들에게도 카메라를 만드는 기업으로 인식되어 있죠. 아래와 같은 반응이 충분히 나올 수 있습니다.

고프로 성장의 일등공신은 누가 뭐래도 액션캠입니다. 사진=pexels.com

‘카메라 회사에서 드론을 만든다더니, 자꾸 추락해서 리콜했다고? 그럼 그렇지. 드론은 드론 전문 제조사가 만든 걸로 사야지.’

카르마의 결함을 제품 자체의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고프로가 가진 기술력의 한계 때문이라고 평가한다는 것이죠. 이처럼 전문성이 결여되었다는 이미지는 카르마의 후속작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고프로 입장에서는 참 골치가 아픈 상황이 됐습니다.

카르마는 액션캠 시장의 수익성이 예전 같지 않자, 고프로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 야심차게 내놓은 제품입니다. 중국 기업이 지배하고 있는 촬영용 드론 시장에 신선한 바람이 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요. 현재까지의 모습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가뜩이나 주가도 시원치 않은 판국인데 엎친데 덮친격이 됐죠. 과연 고프로가 이번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서 재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드론 시장에서 완전히 떠나게 될까요?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됩니다.

*이 기사는 페이스북 공유 또는 기사링크를 직접 게시하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공유하실 수 있습니다. 본문의 일부 또는 전체를 직접 활용(복사하여 붙여넣기 등)하려 할 때는 반드시 운영자의 허가를 받으셔야 합니다.
*기사는 매주 화,목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박종운

박종운

/ 드론스타팅필진
드론에 대해 쓰면서 드론을 배우는 박종운입니다.
park@dronestarting.com
박종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