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열흘 붉은 꽃이 없다’, 즉 부귀영화가 오래 가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고프로(GoPro)를 설명하는 데 있어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이 있을까 싶은데요. 액션캠 시장의 황제로 오랜 시간 군림했던 고프로가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잘나갈 때 거의 100달러에 육박했던 고프로의 주가는 7일 현재 11달러 수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거의 1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 셈이죠. 고프로 창립자이자 CEO인 닉 우드먼(Nick Woodman)은 각종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주가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는데요. 말은 그렇게 해도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 갈 겁니다.

 

닉 우드먼의 모습. 잘생겼습니다. 부럽. 사진=commons.wikimedia.org

 

조사 기관에 따라 수치에 편차가 있지만, 여러 자료를 종합해 봤을 때 고프로의 액션캠 시장 점유율은 대략 45% 수준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1위 자리는 지키고 있죠. 문제는 수익성 악화입니다.

짭프로’로 유명한 SJCAM, 얼마 전에 드론을 출시한 샤오미의 자회사 샤오이(Xiaoyi), 일본을 대표하는 전자제품 제조사 소니(Sony), 7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카메라 명가 폴라로이드(Polaroid) 등 쟁쟁한 라이벌들이 지나치게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결국 제살 깎아먹기 식의 가격 인하 경쟁이 벌어지게 되죠. 고프로는 자사의 보급형 모델인 ‘히어로 세션(Hero Session)’의 가격을 100달러(약 12만원) 가량 내리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는데요. 이 과정에서 꽤 많은 손실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가격 인하라는 굴욕을 당한 히어로 세션. 사진=gopro.com

 

가장 큰 문제는 고프로 제품이 경쟁작들보다 비싸다는 것입니다. 플래그십 모델인 ‘히어로4(Hero 4)’의 경우를 보면 소니 제품과는 그나마 가격대가 비슷한 편이지만, SJCAM이나 샤오이의 액션캠과 비교하면 4~5배 정도 차이가 납니다. 폴라로이드 제품보다도 2배 가량 비싼 편이고요. 보급형인 히어로 세션은 스펙이 많이 부족합니다. 가격도 훨씬 싸고 4K 촬영도 가능한 중국제 대신 히어로 세션을 선택할 이유가 없죠. 한마디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영 좋지 않습니다.

고프로에 애플(Apple)처럼 압도적인 브랜드 파워나 충성도 높은 고객들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고가 정책을 유지하기가 부담스러운 상황인데요. 그렇다고 중국 제조사들과 가격으로 맞불을 놓는다는 건 자살행위에 가깝죠.

 

압도적인 가성비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SJCAM의 액션캠. 사진=commons.wikimedia.org

 

고프로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에 빠졌다고 할 수 있는데요. 힘든 와중에 고프로의 구세주가 될 것으로 기대되는 제품이 있습니다. 바로 고프로가 만드는 드론, ‘카르마(Karma)’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카르마는 고프로가 반전을 위해 급하게 꺼낸 카드는 아닙니다. 회사 사정이 괜찮을 때부터 이미 드론을 만들 것이라 공공연히 언급해왔기 때문이죠. 다만 주력인 액션캠 사업의 전망이 암울하기 때문에, 드론이 돌파구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듯합니다.

원래 카르마는 올 여름께 출시될 예정이었습니다. 첫 티저 영상이 지난해 12월에 공개됐으니 반년 정도면 양호하죠. 그런데 지난 5월 고프로는 카르마 출시를 연말로 연기한다고 밝혔습니다. 팬들에게는 매우 실망스러운 소식이었는데요. 티저 공개 후 제품 출시까지 1년 씩이나 걸리는 건 좀 너무하죠. ‘릴리(Lily)’의 기운이 스멀스멀 느껴지기도 하고요.

릴리의 기운이란?

 

출시 연기의 아이콘(?), 릴리. 사진=lily.camera

 

물론 고프로가 신중한 입장을 취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카르마가 뛰어들 촬영용 드론 시장은 그야말로 레드오션이거든요. ‘팬텀(Phantom)’과 ’인스파이어(Inspire)’를 앞세운 DJI가 압도적인 파워를 자랑하는 가운데 ‘타이푼(Typhoon)’의 유닉(Yuneec)이 대항하는 모양새이며, ‘비밥(Bebop)’을 보유한 패럿(Parrot), ‘엑스플로러(Xplorer)’의 제로테크(Zerotech), ’스칼렛 미니벳(Scarlet minivet)’으로 이름을 알린 윙스랜드(Wingsland)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샤오미까지 ‘미드론(Mi drone)’으로 촬영용 드론 시장 진출을 선언했죠. 따지고 보면 액션캠 시장보다 나을 것도 없습니다. 어설픈 제품을 내놓는다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수 있는 상황인데요. 아직까지 고프로가 카르마의 성능에 대해 확신이 없다는, 매우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 있겠습니다.

 

DJI를 필두로 한 촬영용 드론 시장은 이미 레드오션입니다. 사진=pixabay.com

 

현재까지 4K 카메라를 갖췄다는 것 외에 카르마에 대해 알려진 내용은 거의 없습니다. 닉 우드먼 CEO도 “환상적인 제품이 될 것”이라는 교과서적인 언급 외에는 말을 아꼈고요. 소문에 따르면 팔로우 미(Follow me) 기능을 기반으로 한 셀카드론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지만(릴…릴리?) 말 그대로 소문일 뿐입니다. 자체 카메라를 사용할지 고프로 부착 형태가 될지도 미지수입니다.

셀카드론이란?

고프로 입장에서는 3D로보틱스(3DRobotics)의 ‘솔로(Solo)’가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둔 게 두고두고 신경쓰일 겁니다. ’고프로 액션캠 최적화 드론‘이라는 타이틀로 나왔다가 DJI와의 맞대결에서 패했기 때문인데요. 성능 차이도 없진 않았겠지만 역시 가격에서 절대적으로 밀렸습니다. 팬텀3 프로페셔널과 솔로+고프로 히어로4 조합을 비교하면 전자가 30만원 이상 저렴했으니까요. 굳이 돈을 더 들여가며 솔로를 택해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솔로는 어떤 제품?

 

솔로가 성공했다면 고프로도 웃었을 겁니다. 사진=3dr.com

 

솔로의 선례를 생각한다면 카르마는 자체 카메라 형태를 선택할 가능성이 조금 더 높아 보입니다만 이것도 추측에 불과합니다. 티저 영상에서 정말로 ’영상만‘ 보여준 고프로가 원망스러울 정도네요. 아래는 고프로가 가장 최근에 공개한 티저 영상입니다. 가장 최근이 올 2월이라는 건 함정!

 

 

가장 성공적인 스타트업 중 하나로 추앙받다가 순식간에 언론의 먹잇감으로 전락한 고프로. CEO가 서핑광이어서 그런지 회사의 부침(浮沈)도 참 다이내믹한데요. 고프로는 주력 제품인 히어로 시리즈의 최신작 히어로5와 카르마를 비슷한 시기에 출시할 예정입니다. 이 두 제품에 그야말로 사운(社運)이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죠. 과연 고프로가 짜릿한 반전드라마를 쓰며 명예를 되찾을 수 있을까요? 올 겨울이 정말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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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운

박종운

/ 드론스타팅필진
드론에 대해 쓰면서 드론을 배우는 박종운입니다.
park@dronestart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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