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외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사상 첫 승을 거뒀지만 아깝게 16강 진출에 실패한 해. 괴물 투수 류현진이 신인왕과 MVP를 동시에 석권한 해. 한국을 대표하는 아이돌 빅뱅이 데뷔한 해. 그리고 식목일이 공휴일에서 제외된 해(이럴 수가!).

 

식목일에 쉬던 좋은 시절도 있었죠. 사진=commons.wikimedia.org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2006년, 중국에서는 한참 스타트업 열풍이 불고 있었습니다. 이 바람을 타고 지금은 드론의 성지가 된 중국 선전(Shenzhen, 深川)에 한 기업이 설립됩니다. 이름은 ‘다장이노베이션(Da Jiang Innovation)’, 줄여서 ‘DJI’. 창립자인 프랭크 왕(Frank Wang)은 1980년 생으로, 우리 나이로 하면 당시 27세의 풋풋한 청년이었습니다.

 

DJI의 설립자이자 CEO이자 CTO인 프랭크 왕. 사진=forbes.com

 

왕이 처음 하늘을 동경하게 된 건 초등학생 시절이었는데요. 만화책에서 본 헬리콥터에 엄청난 관심을 보였다고 합니다. 이후 모형 항공기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공부하던 왕은 16살 때 처음으로 RC헬기를 선물로 받습니다. 시험 성적을 잘 받은 덕분이었죠. 하지만 헬기 조종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습니다. 사고가 날 때마다 수리할 부품을 몇 달씩 기다려야 했던 경험은 소년에게 ‘언젠가 쉽게 날릴 수 있는 모형 항공기를 만들겠다’는 꿈을 심어주게 됩니다.

 

RC헬기는 조종이 어렵기로 소문났습니다. 사진=en.wikipedia.org

 

화둥사범대학에 진학해 공부하던 왕은 학교를 자퇴하고 MIT와 스탠포드 입학에 도전합니다. 이 때 첫 번째 좌절을 겪게 되는데요. 두 군데 모두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습니다. 왕은 하는 수 없이 홍콩과학기술대학(홍콩과기대)에 입학해 전자공학을 공부하게 되는데요. 홍콩과기대도 아시아에서 명문으로 인정받는 곳이라는 건 함정입니다.

 

프랭크 왕의 3지망(?) 홍콩과기대의 모습. 사진=commons.wikimedia.org

 

왕은 대학 생활 동안 본격적으로 RC헬기 개발에 매달립니다.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RC헬기의 FC(Flight Controller)를 만드는 데 진력하죠. 훗날 DJI의 ‘팬텀(Phantom)’ 시리즈가 압도적인 성능의 FC 덕분에 성공을 거뒀다는 점을 생각하면, 왕은 대학 시절부터 ‘뭣이 중헌지’를 제대로 파악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DJI가 만든 최신형 FC인 A3. 사진=dji.com

 

수업도 빼먹을 정도로 RC헬기에 매달린 왕은 2005년 의미 있는 보상을 얻습니다. 홍콩 로봇 경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이죠. 자신감을 얻은 왕은 이듬해 친구 두 명과 함께 학교 기숙사에(!) DJI를 창립했고, 이후 선전에 둥지를 틉니다. DJI의 신화가 시작된 선전의 첫 사무실은 침대 세 개가 놓인 아파트였고, 창업 자금은 경진대회 우승 상금과 학교에서 받은 장학금이었습니다.

DJI가 처음부터 팬텀 같은 완제품 드론을 뚝딱뚝딱 만들어냈던 건 아닙니다. 초창기에는 DIY 드론에 들어가는 부품을 만들어 팔았죠. 주요 고객도 일반인이 아니라 대학이나 발전소였습니다. 지금과는 성격이 전혀 다른 기업이었는데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었으니, 바로 왕의 완벽주의였습니다.

스티브 잡스와 비견되는 왕의 완벽주의는 양날의 검과 같은 것이었는데요. 오늘날의 DJI를 만든 원동력으로 작용했지만,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요소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창업 2년 만에 초창기 멤버들은 회사를 떠나게 됩니다. 이 무렵 회사 경영 상태도 악화되는데요. 지인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투자가 없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겁니다. 이때 왕을 위해 종잣돈을 털었던 이들은 모두 주식 부자가 됐으니, 서로가 윈윈(Win-win)한 아름다운 결말이라고 하겠습니다.

 

DJI가 애플과 비교되듯, 왕은 잡스와 비견됩니다. 사진=commons.wikimedia.org

 

그저 그런 기업으로 남을 뻔했던 DJI는 ‘귀인(貴人)’을 만나면서 반전 드라마를 쓰게 됩니다. 그 귀인은 바로 콜린 귄(Colin Guinn). 미국에서 항공촬영 업체를 운영하던 귄은 2011년 인디애나 주의 먼시(Muncie)라는 도시에서 열린 트레이드 쇼(Trade show, 비즈니스를 위한 상품 전시회)에서 왕을 처음 만납니다.

 

DJI 북미 지사를 이끌‘었던’ 콜린 귄. 사진=news24hournepal.blogspot.com

 

당시 귄의 최대 관심사는 ‘어떻게 흔들림 없이 안정적인 항공촬영 영상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는데요. 이는 DJI의 전공 분야였습니다. DJI는 드론의 자체 모터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무게를 확 낮춘 짐벌 시제품을 제작했는데요. 시제품을 보고 뛰어난 기술력에 큰 인상을 받은 귄은 왕에게 DJI 북미 지사 설립을 제안했고, 스스로 그 수장이 됩니다. DJI가 세계 드론 시장의 판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북미 지역에 첫발을 내딛은 것이죠. 귄은 뛰어난 영업 수완을 발휘하며 DJI의 이름을 알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웁니다. “The Future of Possible”이라는 DJI의 유명한 캐치프레이즈도 귄의 작품이죠.

 

DJI를 상징하는 문구, “The Future of Possible” 사진=dji.com

 

2012년 들어 DJI는 세상을 뒤흔들 묵직한 ‘한방’을 준비합니다. 조립이 필요없는 프레임, 설정이 완료된 FC와 소프트웨어, 전용 조종기 등을 갖춘 최초의 완제품 드론을 개발한 것이죠. 2013년 1월 출시된 첫 번째 팬텀은 말 그대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제품이었습니다.

시장의 반응은 상상 이상으로 폭발적이었고, 2011년 420만달러(약 49억원)이던 매출액은 2013년 1억 9천만달러(약 1526억원)로 30배 이상 급증했습니다. 팬텀의 인기 요인으로는 뛰어난 FC 성능을 바탕으로 한 비행안정성, 조립이 필요없는 간편함, 기존 제품에 비해 저렴한 가격 등이 꼽혔는데요. 뛰어난 기술력에 더해 ‘세계의 공장’인 중국의 장점을 잘 활용한 결과였습니다.

 

전설의 화려한 시작, 팬텀. 사진=dji.com

 

팬텀의 대성공을 바탕으로, DJI는 본격적인 시장 장악에 나서게 되는데요. 이후의 행보는 2탄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드론계의 애플’ DJI 이야기 (2)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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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운

박종운

/ 드론스타팅필진
드론에 대해 쓰면서 드론을 배우는 박종운입니다.
park@dronestart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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