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_아나드론

ANA DRONE, DEC 2018

 

알타미라 동굴의 두 눈

알타미라 동굴의 예술가가 묘사하려고 애썼던 것은 움직임이다. 그 움직임은 상처 입은 들소의 고통에서 가장 근사한 현실적 재현을 얻었다. 유럽 전역에서 발달한 구석기시대 동굴 예술의 최고 절정을 보여 준 그 성취를 이룬 힘을 설명하기는 어렵지 않다. 생물의 상처를 바라보는 자에게 애틋함과 냉정함이 교차하지 않았다면 예술적 성취에 다가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두 눈이 지녔던 힘은 당연히 관찰력과 상상력에서 나왔다. 그 두 힘 가운데 어느 하나가 부족해 예술이 아니라 예술에 대한 흠모에 그친 아류, 유사품들은 또 얼마나 많았는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인간은 두 눈을 가지고 있다. 입체감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사물을 입체로 볼 수 있는 능력은 두 개의 눈이 선사한 선물이다. 우리의 귀가 두 개이기 때문에 스테레오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인 셈이다. 두 눈은 좌우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는데, 이 간격 때문에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은 서로 다른 이미지를 보게 된다. 사람의 좌우 두 눈의 망막에 비치는 영상이 일반적으로 대상의 거리에 따라 좌우로 조금씩 밀리기 때문에 입체감이 생기는 것이다.

이제 인간의 두 눈 앞에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이 나타났다. VR을 통해 체험하는 사람이 가상세계로 들어갔고, AR을 통해 현실세계에 3차원 물체를 불러왔다.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

사람들은 VR을 통해 사이버 공간에 몰입했다. 헤드셋과 같은 장비가 있어야 했다. 첫 출발은 스트레오스코프 즉 3D 영화를 볼 때 사용했던 ‘적청 안경’에서 시작됐다. 왼쪽 눈에 해당하는 영상은 빨강, 오른쪽 눈에 해당하는 영상에 청록이나 파랑을 중첩시킨 안경이었다. VR은 그후 공각기동대나 매트릭스, 토탈리콜 등 SF 영화 속에 등장했다. 1938년 등장해 1950년대부터 연구가 시작됐고 1960년대 한차례 바람을 일으켰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는 부침을 겪었다. 그 역사만 100년에 가깝다. 1980년대 이후 몇 차례 실패를 거듭한 가상현실이 지금 왜 다시 뜨는 것일까? 그 힌트를 오큘러스 리프트의 가격과 제품 구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큘러스 리프트는 가상현실 기기에 푹 빠져 있던 팔머 럭키라는 청년이 2012년 개발한 가상현실 게임용 장치다. 개발 자금은 킥스타터라는 크라우드펀딩 서비스로 충당했다. 이 헤드셋을 장착하면 머리의 움직임을 감지해 그에 맞는 가상현실 콘텐츠를 보여준다.

올 해 개봉한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Ready Player One, 2018>은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 액션 SF 영화로, VR 기술을 핵심 소재로 사용했다. 주인공을 비롯한 주요 등장인물들이 VR기기를 사용해 가상 세계인 ‘오아시스’에 접속한다. 그러나 가상현실은 실제 현실에 적용하기까지 기술적 한계를 넘어서야 했다. 쉽게 대중화되지 못하다가 2015년 모바일 디바이스와 3D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삼성전자의 ‘기어 VR’을 비롯한 가상현실 헤드셋 기기들이 물밀듯이 쏟아졌다. 2016년 오큘러스VR의 ‘오큘러스 리프트(Oculus Rift), HTC 바이브, 소니 PS VR 등이 순차적으로 출시되며 대중화를 이룬 것이다. 현실과 분리된 100% 가상의 공간에서 사용자 경험을 즐긴다는 개념인 VR은 현실과의 괴리감으로 인해 사용 영역에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VR의 단점인 현실과의 분리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기술이 현실 공간 속에 가상의 오브젝트를 통해 사용자 경험을 즐길 수 있는 증강현실(AR)이다. 바이두, 삼성전자, 알리바바, 구글, 오큘러스 등이 대표적인 기업이다.

 

 

 

증강현실(AR, Augmented Reality)

사람들은 AR을 통해 현실 위에 가상 정보를 입혔다. 스마트폰과 같은 매체가 있어야 했다. 현실과 완전히 분리된 가상공간을 구축해 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보편화된 형태이다. ‘증강(增强)’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실제 현실 세계를 기반으로 그 현실 위에 무엇인가 다른 것을 추가, 증강시키는 개념이다. 따라서 VR은 기기를 통해서 완전한 가상 세계를 보지만, AR은 가상이 덧입혀진 현실을 본다. AR은 시야와 정보가 분리된 형태이어서 몰입감은 떨어지지만, 현실 세계에 그래픽을 구현하는 형태로 필요한 정보를 즉각 보여 주기 때문에 현실감이 높다. AR은 가상의 정보를 입혀 현실과 상관없는 허상을 보여주기 때문에 VR과 달리 현실과 상호작용이 약하고, 몰입감이 떨어진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영화 속에 등장한 대표적인 사례들은 관객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Minority Report, 2002>에서 주인공이 허공에서 컴퓨터를 조작하거나, <아이언맨 Iron Man, 2008>에서 주인공이 특수 수트를 입으면 필요한 모든 정보가 눈 앞에 펼쳐진다든가 하는 장면 등을 꼽을 수 있다. 주인공 토니 스타크는 자신이 착용한 수트 안의 화면(디스플레이)을 통해 적과 싸우는데 필요한 정보를 바로 확인한다. 2016년에는 영화의 주인공이 아닌 보통 사람들에게도 한바탕 AR 열풍이 불었다. 모바일 게임 <포켓몬 고>의 인기가 그것이었다. 스마트폰을 도로에 비추자 포켓몬이 튀어나왔다. 도로는 실제였고, 포켓몬은 가상이었지만 그때 사람들은 실제보다 가상 이미지와 만나는 현실에서 더 큰 즐거움을 찾았다. 현실에 덧입힌 이미지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현실과 상호작용을 이룰 수 있다는 점에 매료된 것이다. <포켓몬 고>는 현실에서 가장 유명한 AR 게임이 됐다. 물론 군사나 차량에 사용되는 헤드 업 디스플레이(HUD) 등도 AR 기술이 접목된 형태이다. AR은 대부분 스마트폰을 위시한 모바일 디바이스를 활용하게 된다. 현실 공간에 가상의 오브젝트를 결합해야하는 만큼 카메라 기능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혹은 HUD와 같이 현실 공간을 투명 디스플레이로 겹쳐서 보여주는 형태로도 이용된다. 애플, 앱손, 삼성전자, 페이스북 등이 대표적인 기업이다.

 

 

 

혼합현실(MR, Mixed Reality)

사람들은 VR과 AR이 혼합한 형태로 진화한 또 다른 하나의 현실, MR을 만났다. 가장 큰 차이점은 별다른 중간 매개체나 장비 없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좀 더 발달한 기술이라는 점이다. VR과 함께 나타난 포켓몬은 2차원 그래픽으로 처리된 탓에 가상현실이라는 티가 역력했다. 만일 그때 MR의 옷을 입힐 수 있었다면 사람들은 3차원 그래픽의 입체감 있는 포켓몬과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불과 2년 전의 일이다. 영화 <킹스맨:골든서클 Kingsman: The Golden Circle, 2017>에서 활약하는 비밀요원들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으면서도 특수 안경을 끼는 순간 런던 사무실에 모여 함께 회의할 수 있게 된 것도 MR 덕분이다. 그러나 MR의 상용화는 아직 더 시간을 두고 해결할 문제에 속한다. 기술적인 문제, 대용량 데이터를 처리하는데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삼성전자, 인텔 등이 대표적인 기업이다.

 

 

 

평창동계올림픽의 또 다른 선물, VRARMR 비교 체험

평창동계올림픽은 흥미진진한 경기 외에도 첨단 기술이 적용된 다양한 볼거리가 많았다. 5G·드론·클라우드·인공지능(AI) 등 여러 가지 IT 기술이 총동원된 덕분이다. 강릉 올림픽파크에 삼성전자·KT·코카콜라 등이 VR, AR은 물론 MR을 활용해 만든 홍보전시관이 모였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조성한 이 홍보전시관은 특히 VR로 각종 겨울 올림픽 경기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알파인스키, 스피드스케이팅, 스키점프 등을 직접 타는 것 같은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몸은 홍보관 안에 있지만 눈 위라는 가상 공간에서 봅슬레이를 하는 것 같은 체험이었다. 사람들은 헤드셋을 착용하고 직접 스켈레톤, 스노보드와 같은 올림픽 종목을 체험했다. 몸에 진동은 물론이고 얼굴에 바람이 불어 실제로 스노보드를 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AR은 길 찾기 서비스에 적용됐다. 스마트폰으로 길을 비추면 현실의 길 위에 가상의 안내표시가 뜨는 방식이었다. MR은 어떻게 활용됐을까. 강릉역에 있는 ICT스퀘어가 대표적이었다. 인근 산을 축소해놓은 모형을 쳐다보면 그곳에 올림픽 경기장이 어떻게 건설됐는지 볼 수 있었다. VR과 달리 3D 안경 없이도 가상세계를 볼 수 있었던 것이다.

 

 

홀로렌즈(HoloLens), VRAR을 넘어서 MR로 향하다

VR, AR 기술이 미래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찬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을 때, 그 호기심이 마치 이보다 더 나아간 미래 기술이 나타나지 않을 것처럼 왕성해지고 있을 때, MR(Mixed Reality) 기술을 담은 제품이 나타났다. 이전에는 없던 물건이었다. ‘홀로렌즈(HoloLens)’라는 이름을 가진 정식 제품이었다. 마이크로소트프에게도, 첨단 기술 애호가들에게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물론 이전에도 ‘MR’이라는 용어와 개념은 존재했다. 그러나 말 그대로 개념일 뿐이었다. VR과 AR 기술이 그동안 주로 ‘보여주기’에 치우쳤다면, 홀로렌즈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건네기 시작했다. 음성과 동작을 인식하고, 현실과 가상을 합성한 경험을 제공했다. MR 디스플레이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매직리프(Magic Leap)라는 회사도 있다. 이 회사는 2010년 설립된 미국의 AR 전문 스타트업으로, 구글, 알리바바, JP모던 등에서 약 20억 달러(2조 2000억 원)를 투자 받았지만 실제 제품이 나오지 않아 많은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2017년 8월 미국 특허청(USPTP)에 AR 헤드셋과 관련한 특허를 출원하면서 이목을 집중시켰다. 실제 테이블·손·바닥·천장 등 현실의 물체를 인식하고 이에 맞는 컴퓨터그래픽(CG) 효과를 바로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를테면 가상의 고래가 체육관 바닥에서 위로 솟구치는 식이다.

MR 기술을 담은 홀로렌즈는 2016년 3월 미국과 캐나다에서 처음 출시됐고, 같은 해 10월 호주, 아일랜드, 프랑스, 독일, 뉴질랜드, 영국이 그 뒤를 이었다. 더 이상 별도의 PC가 필요 없는,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된 컴퓨터였다. MR은 VR의 현실과 100% 분리된 가상 공간에 몰입감과 현실 공간을 부여함으로써 가상의 오브젝트를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제 VR·AR의 엔터테인먼트 분야뿐만 아니라 제조, 헬스케어, 교육, 항공우주 등 전 산업 분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MR의 진화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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